6월 16일 그대 제일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좁은 잡초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음~ 금년에도 나는 생시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대신에 산 아래 사는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시집 한 권을 등기로 부쳤지... '객초'라는 몹쓸 책이지 상소리가 더러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첫 페이지를 열면...... 그대에게 보낸 저녁 미사곡이 나오지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꺼야 나같은 똥통이 사람돼 간다고 사뭇 반가워 할꺼야 음~~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을 입은 채 허우적 허우적 거리지 말이 그렇지 적삼이라 어깨는 잠기고 모가지만 달랑 물 위에 솟아나 있거든..... 머리칼은 겁먹어 오그라 붙고 콧잔등엔 기름칠을 했는데 동공 아래 파리똥만한 점도 꺽었거든 국적 없는 도화사만 그리다가 요즘 상투머리에 옷고름, 댕기, 무명치마, 날 잡아 잡수 겹버선 신고 뛴다니까.... 유치한 단청색깔로 붓에 힘을 뺀 제자 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나는 무덤에 못가는 멀쩡한 사지를 나무래고 침을 뱉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 간밤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이렇게 시든다우... 꿈이 없어서 꿈조차 동이나니까 냉수만 퍼마시고 촐랑대다 눕지.... 머리 맡에는 그대의 깊고 슬픈 시선이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싹수가 노랗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시인 김수영은 1968년 6월 16일 밤늦게 술을 마신후 귀가길 인도에서 버스에 치였고 다음날 6월 16일 눈을 감았다. 김영태는 <멀리있는 무덤>으로 그를 회상했고 김영태의 작품을 김영동은 노래로 만들 때 음반 '먼길'에서 <멀리 있는 빛>이라고 바꾸어 표현하면서 김수영을 추모했다.
시에서 이야기한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는 시인 김수영의 누이인 김수명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