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민족주의나 인종적 편견과 증오가 가진 파괴적인 힘의 가장 끔찍한 예를 찾기 위해 굳이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달라이 라마가 예로 든 보스니아 전쟁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1991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공화국이 구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바로 직후, 세상은 극단적 민족주의의 최악의 국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세 개의 전통적인 민족집단인 동방정교 세르비아계와 가톨릭 크로아티아계와 이슬람교 보스니아계가 인종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격렬한 내전을 시작했다. 새로운 국가의 정치권력을 손에 넣거나 그 일부라도 쟁취하기 위해 각 민족 진영이 투쟁을 벌인 것이다.
1995년 데이턴 협약(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서 열린 협상)으로 전쟁이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10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고, 2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추방되어 난민이 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지역 대부분이 황폐해졌다. 전쟁이 지나간 곳마다 가옥의 60퍼센트와 학교의 절반, 병원의 3분의 1이 부서지거나 파괴되었다. 발전소와 도로, 수도 시설도 망가졌다. 고문이 자행되었고, 군인들은 가족이 보는 앞이나 공공 광장에서 여성을 강간하고 때로는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몇 날 며칠 심지어 몇 주씩 그렇게 했다. 세 집단 모두가 가담했다. 세르비아계는 특히 '인종 청소' 시도가 무자비했다. 조직적으로 집을 불태우고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남자들을 고문하고 굶겨 죽였다. 그들 지역에 살고 있는 다른 집단들을 제거하기 위해 작전을 짠 것이다.
너무도 엄청나고 상상하기 힘든 규모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때로 그런 전쟁들을 단순히 '세계의 사건'으로 바라보기 쉽다. 개인의 평범한 일상에 묻혀 극단적 민족주의에 대한 충격은 금방 실종되어 버린다. 그러나 세 인종의 이야기는 '우리'와 '그들'의 사고방식이 빚어낸 비극의 대표적인 예이다.
-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당신은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