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된 아버지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
얼굴이 간지럽다
아버지는 빨간 핏방울을 입술에 묻히고
바닥에 스민 듯 잠을 자다
개처럼 질질 끌려 이송되었다
반항도 안 하고
아버지는 나를 잠깐 보더니
처제,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 - 하품을 하는 저 뱀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아름답고, 촉촉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나는 스물한 살 이후로, 그러니까 아버지가 심각한 정신적 병(대체로 알코올중독증과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항상 두 가지 고민을 갖고 살았다. 내가 아버지를 죽이게 되진 않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나를 죽이진 않을까. 우린 정말 대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을 쓰며 저주를 퍼부었고, 그러다가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는 했다. (중략) 다만 너무 많이 사랑해서, 서로가 괴로운 것이다.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아마 나는 시를 안 썼을지 모르고 (자신 없지만) 웃으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관조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사랑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자주 할퀴어놓고는 돌아서서 운다. 이건 정말 진부한 얘기다. 하지만 사는 것은 대체로 진부하다.”(「일곱 살 클레멘타인, 그리고 아버지」, 『현대문학』2008년 1월호.)
-박연준, 시집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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