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61213135500431
이런 상황에도 당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소금세를 없애지 못한 이유는 소금세가 재정수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면세특권을 가진 귀족들의 조세저항이 워낙 심하다보니 직접세를 거둬들이기보다는 간접세로 세수 대부분을 충당했고 결국 조세저항의 한계선을 넘어서면서 반란을 자초한 셈이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신라 말기 유명한 문인이자 정치인으로 알려진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 그가 중국에 이름을 날린 것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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