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에 여고를 거치면서 남학생들과는 얘기도 해서는 안된다고 배웠던 시절.
대학 캠퍼스의 봄은 꽃보다 더 화려한 젊은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남학생과 마음껏 얘기를 해도 된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가슴 설레이던 그 시절.
그때의 사람들을 이제는‘386’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합니다.

85학번의 전형적인 386세대인 저.
남학생이라고는 버스에서도 눈도 못 마주치던 저에게 대학 캠퍼스는 참으로 근사했고, 거기에서 마주치는 남학생들은 참으로 싱그러웠습니다.
그리고 강물이 터지듯 6년 동안 막아뒀던 제 가슴에도 사랑의 봇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식처럼 치렀던 미팅에서 그를 만났고, 그의 햇살같은 미소에 저의 대학 1년은 사랑앓이로 공부는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를 보고자 새벽밥 먹고 집을 나서면
“너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빨리 학교를 가는구나”라는 엄마의 핀잔이 으레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그 남학생이 지나가는 길에서 그를 기다렸고, 그 남학생의 시간표를 제 수첩 귀퉁이에 적어 놓고 강의실 주변을 얼쩡거려도 보았습니다.
난 너가 참 좋다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의 전화만 기다렸고 그와의 우연만 기다리는 숙맥같은 저는, 그를 만나기로 한 날에는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에 전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약속시간에는 꼭 10-20분 늦게 도착하는 여우짓을 하였답니다.

그때는 여자는 사랑에 적극적이면 안된다는 것을 진리처럼 믿었나봐요.
참 바보같죠?
결국 제 마음에 연연해하던 그는 잡히지 않는 저를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사랑에 익숙치 못한 19살 소년과 소녀는 이별을 하고 말았지요.
저 역시 그를 좋아하는 제 마음이 너무나 버거워서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면서 알아 버렸습니다.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이 텅 빈 것같은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것을요.
그와 빈 강의실에서 이별을 한 뒤, 휘청이는 발걸음을 추스르며 교내 지하식당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빼들고 멍하니 앉았을 때, 들려오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김창완의 ‘지금 나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커피와 함께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그의 얼굴도 잊혀지고, 그로 인해 세웠던 불면의 밤들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지금도 ‘지금 나보다’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어두운 식당 구석에서 커피와 함께 삼키던 쌉싸름한 눈물의 기억이 저를 추억에 젖게 합니다.
저에겐 참 아프고 아름다운 노래인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불운의 노래에서 다시 한번 들으며 추억에 젖고 싶네요.


-MBC라디오 2시만세 '불운의 명곡' 코너, 청취자 사연 중에서

http://www.imbc.com/broad/radio/fm/hurray/weekly/1676856_119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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