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주-여인논문서

from 좋은글모음 2020. 12. 10. 12:20

혈기가 방장한 사람이 스스로를 기름을 늙은이가 앉고 눕는 것 같이 하여 사람을 시켜 밥을 떠먹이게 하고 고기를 빻아 오게 하며 미음만을 마신다면 일년이나 반년이 못 가 지체가 약해져서 마침내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든 사람이 되어 죽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은데도 스스로 나의 생활과 섭양이 아무 늙은이와 같으니 장수하는 것도 또한 마땅히 그 노인과 같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을 옳다 하겠는가?

조선 후기의 문장가 홍길주(洪吉周)가 〈여인논문서(與人論文書)〉에서 한 말이다. 이웃의 노인이 건강히 장수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하면 장수할 수 있겠구나 하여 그 노인처럼 고기를 빻아서 먹고 밥 대신 미음만을 먹었다. 나는 노인의 장수를 얻고 싶어 그가 하는 대로 했는데,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노인의 건강이 아니라 노인의 늙음이었다. 노인의 건강을 얻고 싶으면 노인이 하는대로 해서는 안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글을 쓰려면 옛 문장가의 말투를 본뜨거나, 그 글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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