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교육학 이론가이자 실천가는 셀레엔기(Chellean times:구석기 시대에 속하는 한 시기로 돌도끼가 주로 사용되었음)에 살았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부족에게 알려진 이전의 다른 어떤 도구보다도 더 예리하고 쓸모 있는 도구를 만듦으로써, 그 지역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선구자적인 그에게 ‘새 주먹’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실천가이자 사색가인 ‘새 주먹’은 어느 날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하나의 영감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은 즐거움을 위해 놀고, 어른들은 안전과 풍요로움을 위해 일을 한다. 뼈와 막대기, 그리고 조약돌을 가지고 노는 이 아이들이 의식주와 안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도록 가르친다면, 우리 부족이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될 텐데...” 이러한 생각은 ‘교육목표’가 되었고, 그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우리 부족민들이 배불리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 끝에 ‘새 주먹’은 이 첫 번째 교육과정의 첫 번째 과목을 ‘맨 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기술’로 정하였다. 다음으로 털이 길고 작은 말을 잡을 때 주로 몽둥이를 사용하였으므로(왜냐하면 그 말이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털이 긴 작은 말을 몽둥이로 잡는 것’을 두 번째 과목으로 정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부족민들이 사나운 검치호랑이를 퇴치하는 수단으로 불을 사용하는데 착안, ‘불로 검치호랑이를 몰아내는 것’을 세 번째 과목으로 정하였다.
이 교육과정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이 세 과목의 실습을 통하여 단지 유희적인 놀이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유목 활동을 배우게 되고,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넉넉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갔다.
‘새 주먹’의 부족민들은 이 훌륭한 교육제도로 영원히 잘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때 안전하고 행복했던 동굴 왕국에서의 생활은 불안전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 부족이 거주하는 계곡의 바로 위쪽까지 빙하가 다가와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오랜 세월을 거친 빙산이 모아온 흙과 자갈이 개울물 속에 섞여들었다. 한때 수정같이 맑아서 바닥까지 볼 수 있었던 개울은 탁한 물로 변했다. 따라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털이 긴 작은 말들은 늪지를 떠나 건조하고 너른 평원을 향해 멀리 떠나가고 그 자리는 자그마한 얼음조각과 함께 내려온 영양들이 차지했다. 영양들은 매우 온순하고 민첩했으며, 위험에 대비한 예리한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영양들 가까이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다. 때문에 말을 몽둥이로 때려잡는 기술도 쓸모가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대기 속에 습기가 많아져 검치호랑이들이 폐렴에 걸려 대부분 죽어갔다. 따라서 불로 검치호랑이를 쫓는 기술도 쓸모가 없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치호랑이가 사라진 후 보다 더 사나운 빙하의 곰들이 나타났다. 곰들은 불을 무서워하지 않아 불로 검치호랑이를 쫓는 기술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부족민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운 모든 기술들을 절망 속에서 포기해야만 했다. 음식으로 이용할 물고기나 고기가 없었으며, 옷으로 쓸 짐승 가죽도 없었고, 밤낮으로 오솔길을 다니는 털투성이의 저승사자(곰)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부족 중에는 옛날 ‘새 주먹’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오랜 생각 끝에 덩굴을 엮어 조잡하나마 후릿그물을 만들어 흙탕물 속에서 고기를 잡기 시작하였다. 이 방법은 부족민들 전체가 옛날의 방법, 즉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기를 혼자서 잡아들였다. 또 다른 사람은 탄력 있는 나무 덩굴로 올가미를 만들어 영양들이 다니는 길목에 덫을 놓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옛날에 12명이 1주일 동안 몽둥이로 말을 잡았던 것보다 더 많은 고기와 가죽을 하룻밤에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곰이 지나간 자리에 깊은 구덩이를 파서, 그 위를 나뭇가지로 덮어 함정을 만든 후 곰이 떨어져 갇히면 돌멩이로 때려잡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하여 그 부족민들은 예전보다 더욱 안전해졌으며, 사로잡은 곰들로 고기와 가죽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새로운 방법들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면서 모든 부족민들은 새로운 생활방식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물고기 그물을 만들고 영양 덫을 설치하고, 곰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파느라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다.
일을 하면서 몇몇 사려 깊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일부는 학교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그물 짜기와 사용법, 덫 설치하기, 함정파기와 같은 새로운 활동들은 현대생활에 필수불가결한데, 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자 무사안일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순수한 질문에 즉각 반박하였다.
“학교?”
“자네들은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지도 않잖은가? 자네들은 지금 여기 진흙 속에서 일하고 있잖은가?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일이 학교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러자 학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이 대꾸했다.
“학교는 지금 아무런 가르침도 주지 못하고 있소.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몽둥이로 말을 때려잡으며, 호랑이를 몰아내는 수업이 무슨 소용이 있소? 그물의 사용, 영양 덫 설치하기, 곰 잡기를 왜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부족민들, 특히 학교를 관리하는 지혜로운 원로들은 이 제안에 대해 관대하게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했다.
“그렇게 해서는 교육이 되질 않네.”
“그것은 단순한 훈련이기 때문이야. 물고기 잡기, 몽둥이로 말 때려잡기, 호랑이 몰아내기 등 기본적인 과목들로 학교 교육과정은 지금 양이 너무 많네. 우리는 그물 짜기, 영양 덫 설치하기, 곰 죽이기 등과 같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이런 것들을 교육과정에 추가할 수가 없네. 구석기시대 초기의 교육제도를 창시한 우리의 위대한 ‘새 주먹’께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걸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젊은이들에게 기본원리에 대해 보다 철저한 기초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네. 그러다 보니 요즘 중등학교 졸업생들까지도 심지어 교사들조차도 직접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다던가, 몽둥이를 쓰는 방법이 서투른데 그 이유는 우리가 기본원리 교육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지.”
“하지만, 제기랄.”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말을 이었다.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그런 쓸모없는 활동에 흥미를 갖겠습니까? 더 이상 쓸모가 없는데 말을 몽둥이로 때려잡는 방법을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지혜로운 원로들은 매우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게. 우리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네. 우리는 단순한 훈련으로 발전시킬 수 없는 일반화된 민첩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르치네. 우리는 말을 잡기 위해 몽둥이로 말을 때려잡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네. 우리는 영양 덫을 설치하는 것처럼 평범하면서도 전문화된 작업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학습자의 일반화된 힘을 개발하기 위해, 몽둥이로 말을 때려잡는 방법을 가르치네. 우리는 호랑이를 몰아내기 위해 호랑이 몰아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네. 우리는 생활의 모든 일과 관련되면서도, 곰 잡기와 같은 일로는 기를 수 없는 고상한 용기를 줄 목적으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라네.”
교육과정의 개편을 요구했던 대다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진보적이었던 한 사람이 마지막 항변을 하였다.
“하지만 어쨌든 시대가 변했다는 점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신식의 활동을 시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런 새 방법들이 상당한 교육적 가치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자 마침내 지혜로운 원로들이 분개했다. 그들의 친절한 미소는 사그러들었다.
“ 자네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진정한 교육의 본질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 것이네. 교육이란 거센 물살 속에서도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바위와 같이,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도 버티어 내는 그 무엇이네. 교육이란 어떤 영원한 진리이며, '검치호랑이 교육과정'은 그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네!!!”
-“검치호랑이(saber-toothed tiger) 교육과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