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장왕이 어느 날 밤에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던 중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모든 촛불이 꺼졌다.
그때 평소에 장왕의 후궁 허희를 사모하고 있던 신하 하나가 사람을 분간하지 못하는
깜깜한 어둠을 이용하여 허희에게 다가가 입에 키스를 했다.
허희는 깜짝 놀라 자신의 입에 키스한 범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범을 꽉 붙들었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범인이 쓰고 있던 갓의 끈이 후두둑 끊어졌다.
허희가 외쳤다.
"대왕! 방금 어떤 자가 제게 무례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의 갓끈을 뜯어가지고 있사오니 불이 켜진 다음 엄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장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였다.
"이 자리는 신하들과 즐거이 놀자고 마련한 잔치이니 누구를 벌할 생각은 없소이다.
모든 대신들은 당장에 자기의 갓끈을 떼어라. 만일 불이 켜진 다음에도 갓끈이 붙어 있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오."
신하를 아끼는 장왕의 깊고 넓은 마음으로 인해 후궁에게 입을 맞춘 신하는 죽음을 면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장왕은 정나라를 치다가 원병으로 온 진나라 군대 때문에 패하여 몰리게 되었다.
장왕이 사로잡힐 위기에 처했을때 부장 당교가 바람같이 나타나 장왕을 구출하였다.
그는 장왕을 구출했을 뿐 아니라 자기 휘하에 군대를 지휘하여 진나라 군대와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그에 힘입은 초군이 반격을 가하여 장왕은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싸움이 끝난 다음 장왕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만든 당교를 불러 공로를 치하했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나는 필경 싸움에서 죽고 말았을 거요. 이 공로는 내 두고두고 잊지 않겠소."
당교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저야말로 대왕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년전 대왕께서 잔치를 벌이던 날 밤에 무례한 짓을 한 신하가 바로 저이옵니다.
저의 목숨을 살려주신 것만도 감읍할 일이온데 공로라니 가당치 않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