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은 일부분일뿐. 조회수 : 417   별점
글 쓴이 : 호의은행 날짜 : 2009-07-10 추천 : 1 반대 : 0
이순신 수국水國 프로젝트
_ 장한식 글 |조창배 그림/행복한나무,2009-04-28 00:00:00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휘관의 뛰어난 전투능력과 적보다 나은 무기, 하늘을 찌를듯한 병사들의 기세 정도면 전투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전투가 단기전이 아닌 장기, 그것도 7년(1592~1598)이나 되는 초장기전이라면 어떠할까? 국토는 초토화 되었고, 국가는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장기전은 고사하고, 단기전 역시 원활히 수행해 낼수 없을 것이다. 그럼 이순신은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떻게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낼수 있었을까? 武人 이순신이 아닌 경제인 이순신의 행적을 되집어 보자.

7년전쟁 초반 이순신은 조정이 아무것도 해줄수 없음을 인식하고 스스로 전쟁 물자를 조달할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삼도해안을 하나로 묶는 단일체계인 '水國'이였다. 이 수국은 간단히 말해 둔전을 기반으로 흩어졌던 백성을 모아 농사짓게 하여 그 조세로 군을 유지하고, 200년 동안 버려졌던 황금어장 바다를 활용해 전쟁비용을 조달하는 완벽한 자급자족 체계인 군정체제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은 선조에게서 이와 같은 것을 어떻게 받아 내였나 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수국에서 행정, 사법, 징세, 재정, 군권을 자신에게 두었고, 모든 인사권까지 선조에게서 받아낸다. 전시라는 특수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 이 모든 것이 왕의 것인 시대였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역적으로 취급 받던 시대였다. 더군다나 옹졸의 대명사 선조아닌가! 여기서 이순신의 색다른 진면목을 느낄수 있다.

우 리가 알고 있기론 이순신은 타협하지 않고, 고지 곧대로 원칙만을 지키는 분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 나타난 그는 '능수능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자신만의 단일체계를 이루어내기 위해 그가 했던 행동들은 '집요함' 그 자체다. 그 약삭빠른 선조도 어찌 할수 없을 정도이다. 군의 기강에 있어서는 무엇하고도 타협하지 않는 그이지만, 수국을 지켜내기 위한 연출력은 의외의 모습이였다. 빠른 상황판단과 모든 환경을 적절히 활용했던 이순신. 우리가 알지 못한 또 다른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쟁점 하나는 이순신의 죽음이다. 종전후 선조에 의해 제거될 것이 확실하였기에 일부러 총에 맞았다는 자살설과 전쟁이 끝난뒤 그의 무덤이 10년뒤 옮겨진 사실로 미루어 보아 전사한 것이 아닌 숨어지냈다는 은둔설이 지금까지의 대표적인 설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최측근인 조카 이분이 기록한 '행록'과 정부의 정식 기록인 '선조실록'이 이순신의 죽음을 다르게 적고 있기에 발생한다. 선조실록에서는 이순신이 敵丸(적의 탄환)을 맞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행록에는 飛丸(날아든 탄환)으로 기록하고 있다. 왜 이순신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아들 회와 조카 환은 이분에게 적환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이 당시는 음력 11월9일로 겨울이였으며, 새벽녘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탄환이 두꺼운 갑옷을 뚫고 가슴에서부터 등을 완전히 관통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야도 흘릴뿐더러 더군다나 바다위의 대장선이였다. 차라리 13척으로 600척과 싸운 명량에서 전사하였다면 상식적으로 이해라도 할 수 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시각 아무렇게나 발사한 일본군 탄환에 재수없이 정확히 맞았다는 것은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여기에서 저자는 이 당시 실록에서 갑자기 거론되고 있는 인물 '손문욱'을 지목한다. 손문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후 종전을 얼마 앞두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넘어온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반이순신계의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손문욱은 이순신 전사 당시 대장선에도 타고 있던 인물이였으며, 실록에서는 이순신 전사후 사후처리를 손문욱이 주도적으로 처리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문욱이 어떤 인물이였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종전후 손문욱은 왕의 비호아래 승승장구 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손문욱이 왕의 사주아래 이순신을 저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여기에 선조의 태도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선조는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담담히 '알았다'라고만 답한다. 여기에 친이순신계인 명나라 수군도독이 이순신의 후임으로 친이순신계를 추천하자 단 하루만에 자신의 측군을 내정하고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전사 시점이 선조에게 굿 타이밍이였다는 것이다. 이 당시 이순신은 명으로부터 '대명 수군도독'직을 받은 상태였다. 이는 전쟁이 끝나도 선조가 이순신을 제거할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이순신 또한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종전후 계획도 마련했던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순신의 죽음에 선조가 직·간접적 영향이 있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역사적 가정처럼 허무한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이순신이 7년전쟁후 살아있었다면 이후 조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7년전쟁 초기의 기반이 되었던 제1의 수국 한산도, 후기의 기반이 되었던 제2의 수국 고금도, 이후 대마도를 제3의 수국으로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이 당시 이순신에게는 막강한 군이 있었고,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으며 수많은 지식인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더구나 명나라의 지원은 이 당시 무엇보다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개혁 세력으로 자리잡아 무역을 통한 해외진출을 이루었다면 300년 뒤 치욕을 다시 겪진 않았을것 같다. 3면이 바다인 나라가 운하를 판다고 난리다. 우리는 지금 이순신의 무엇을 되새겨야 하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어지는 지금이다.


:해양국가, 반독립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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