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장진성 교수 "16세기 후대화가 그림" 주장
"절벽·잡초·넝쿨 등 화풍 명나라 광태사학파와 비슷 조선화가가 창조적으로 변형"
양팔을 턱에 괴고 연못을 지그시 바라보는 도인을 그린 15세기 선비화가 강희안(1417~1464)의 <고사관수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는 조선초 대표적인 문인화로 이름높다. 작가가 확인되는 몇 안 되는 조선초 그림으로도 꼽히는 이 명작의 작가가 강희안이 아닌 16세기 후대 선비화가라는 주장이 나왔다.
장 교수는 '조선 중기 절파 화풍과 광태사학파'라는 논고에서 < 고사관수도 > 를 강희안 작품으로 볼 수 없는 근거를 동시기 중국 그림 양식과의 비교를 통해 색다르게 설명한다. 16세기 명나라에서 유행한 '광태사학파'라는 직업 화가 집단 일부의 그림들과 필묵법, 구도 등과 < 고사관수도 > 가 빼어닮은 듯한 특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광태사학파는 '미치고 사악한 화가 일파'라는 뜻이다. 거친 붓질, 강한 흑백 명암 대비 등을 특징으로 하는 명나라 절파 그림풍을 바탕으로 더욱 광포하고 극단적인 필묵과 기괴한 구도를 즐겨 쓴다 하여 붙은 별칭이다. 장 교수는 특히 이들의 일원인 장숭, 장로의 그림 속 표현들이 < 고사관수도 > 의 구도, 필묵법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지목한다. 일례로 < 고사관수도 > 오른쪽 화면 위에 보이는 절벽과, 암벽에서 보이는 잡목·잡초와 아래로 흘러내려 힘차게 뻗어나가는 넝쿨들은 화가 장로의 화풍을 수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화면 왼쪽 아래의 갈대·바위 표현은 같은 광태사학파 화가인 장숭의 강한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 고찰했다. 그는 " < 고사관수도 > 는 바위 표현의 경우 두터운 윤곽선을 두른 뒤 내부를 비워두는 필묵법이 구사되는데, 이는 장숭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양식적 특징"이라며 "장숭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갈대와 작은 바위들이 < 고사관수도 > 에 그대로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결국 < 고사관수도 > 는 16세기 전반 신원 미상의 조선 사대부 화가가 광태사학파의 두 대표적 화가인 장로와 장숭의 화풍을 받아들인 뒤 철저한 자기 소화 과정을 거쳐 창조적으로 변형한 작품이라는 결론이다. 다만, 대작을 그리는 중국 절파 화풍과 달리, 그림 크기(15.7×23.4㎝)가 작고, 시정적·사색적 분위기, 턱을 괴고 엎드린 인물상의 조선적 특색 등을 고려할 때 후대 조선 문인화임에는 틀림없다는 논지다. 그는 구체적인 제작 연대를 "장로와 장숭의 생몰년 등을 감안할 때 1530~1550년대 정도"로 추정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설득력 있는 회화 양식적 근거를 갖춘 주장인 만큼 재미있는 논쟁감이 나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림에 찍힌 강희안 인장이 과연 후대에 만들어 찍은 것인지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회화사 권위자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참신한 논거를 제시했지만, 이미 15세기 조선에 절파 화풍이 들어온 것이 분명하고 강희안 도장도 조선초 찍은 것으로 보여 제작 시기를 늦춰 봐야 한다고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며 "그림 속 인물의 특징이나 붓질법 등에 대한 심층적 논의 등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