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남쪽에 위치한 국가로서 지정학적으로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강대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남북예멘이 각기 시차를 두고 독립했기 때문에 분단되었다. 북예멘은 제1차 세계대전후 오스만 터키가 철수함으로써 독립하였으나, 남예멘은 1967년 영국이 철수하면서 독립되었다. 더욱이 독립당시 북예멘에는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섰고, 남예멘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남북예멘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통합하려는 다툼을 쉬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남북예멘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주변의 아랍권 국가들이 중재하여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을 반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북예멘은 통일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무력충돌평화협정통일원칙 합의 과정을 반복하던 가운데 1989년 남북예멘은 정상회담을 갖고 마침내 통일헌법안을 승인했다. 그 이후 1990년 5월 통일을 선포함으로써 합의에 의한 통일에 성공하였다.
예멘이 합의에 의해서 통일을 이룩했던 것은 아랍권의 지속적인 중재도 있었고, 당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영향도 컸으며, 남북예멘 국경지대의 유전에 대한 공동개발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무엇보다도 남북예멘 지도자들이 권력배분에 합의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북예멘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맡고 남예멘은 부통령, 총리, 내무장관, 외무장관을 맡는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대등한 배분을 고려하다보니 자연히 정부기구는 확대되었고 남북예멘의 지도자 사이에서 관료나 군인의 명령계통과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해지면서 행정체제의 효율성은 감소되었다.
통일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남북예멘의 군대를 통합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통합의 기조로 내세운 이슬람 교리에 대해 남북예멘 주민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멘의 보수주의자들은 이슬람 율법을 ‘모든 법의 유일한 근원’으로 삼을 것을 주장한 반면, 남예멘의 중산층들은 이슬람 율법의 불합리성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 차이는 일부다처제, 여성의 사회활동 문제, 음주 허용 여부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통일예멘의 수도 사나는 정부기구의 팽창과 걸프전 이후 귀환한 해외 근로자로 인하여 인구가 폭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과 주택은 물론이고 식수 및 전력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주민들은 상호불신과 갈등의 심화로 집단간에 첨예하게 대립하였으며, 반정부 시위와 노동자 파업, 주민 폭동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그 와중에 남예멘의 지도자들은 집무를 거부하고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으로 철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남북예멘 사이에 무력충돌이 벌어졌으며, 이 충돌에서 7,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북예멘이 승리함으로써 남북예멘은 재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남북예멘이 합의 통일에 성공한 이후에도 무력충돌을 겪었던 이유는 남북예멘의 정치인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감을 지니고 있었고, 이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통일후 4년만에 내전이 벌어진 예멘 사례에서 우리는 민족통합이 뒷받침되지 못한 국가결합의 위험성과 함께 통일후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분야에서의 실질적인 통합과정의 복잡성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남북예멘의 지도자들이 통일을 위한 준비를 좀 더 착실히 다진 다음 통일에 임하였더라면, 또는 통일협상을 더욱 신중하고 현명하게 진행하였더라면 다시 분열되었다가 무력으로 재통일되는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예멘공화국이 1997년 4월 예멘사회당이 불참한 가운데 2차 총선을 실시하여 살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국민회의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최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구의 재정안정지원 계획에 따라 경제도 점차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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