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겠노라. 푸른 것은 그것이 버드나무인 줄 알겠고, 노란 것은 그것이 산수유꽃·구라화인 줄 알겠고, 흰 것은 그것이 매화꽃·배꽃·오얏꽃·능금꽃·벚꽃·귀룽화·복사꽃 중 벽도화(碧桃花)인 줄 알겠다. 붉은 것은 그것이 진달래꽃·철쭉꽃·홍백합꽃·홍도화(紅桃花)인 줄 알겠고, 희고도 붉거나 붉고도 흰 것은 그것이 살구꽃·앵두꽃·복사꽃·사과꽃인 줄 알겠으며, 자줏빛은 그것이 오직 정향화(丁香花)인 줄 알겠다."[이옥의 ‘화설(花說)']

 정조는 왜 이옥의 문장을 소품체라 규정하고 고치라고 닦달했던가. 정조는 소품을 두고, 자질구레한 것을 제재로 선택하여 세세하게 늘어놓거나, 도덕적으로 제어되지 않은 정서를 과도하게 표현하는 글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성리학적 세계관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옥은 이렇게 말한다.

 "서울 장안의 꽃은 여기에서 벗어남이 없으며, 이 밖의 벗어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볼만한 것은 못 된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때에 따라 같지 않고 장소에 따라 같지 않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 밖으로 뻗어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없고, 수풀 속의 꽃은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이런 가지각색 그것이 꽃의 큰 구경거리이다."

 꽃들은 단지 색으로만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각각의 꽃은 또 시간과 공간에 따라, 눈과 비 등 날씨에 따라 보는 주체에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란 말로 요약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화방창이란 말은 꽃의 개별성을 뭉개버리는 폭력이다. 개별적인 것들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의 사용 방식이 이옥 산문의 특징이다. 생각해보라, 세상은 얼마나 다양한가. 또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 개체들인가. 이옥은 자신의 언어 속에서, 일상에서 쉽사리 망각되는 세계의 다양성을 복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옥과 문체반정"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글 출처 : http://blog.joins.com/mulim1672/899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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