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이 다시 말했다.

"적이 비록 성을 에워쌌다 하나 아직도 고을마다 백성이 살아 있고 또 의지할 만한 성벽이 있으며, 전하의 군병들이 죽기로 성첩을 지키고 있으니 어찌 회복할 길이 없겠습니까. 전하, 명길을 멀리 내치시고 근본에 기대어 살 길을 열어나가소서."

최명길이 말했다.

"상헌은 저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제 저들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면 세상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온데, 상헌이 말하는 근본은 태평한 세월의 것이옵니다.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터인데,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넋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白夷)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합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

병자호란 때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이 말하는 길은 서로 달랐다.

최명길은 삶에 어찌 치욕을 딛고서라도 도모해야 할 것이 없겠느냐는 것이었고 김상헌은 죽음으로라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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