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아우는 김흠순이며, 맏누이는 보희이고, 누이동생은 문희입니다.
이 무렵 신라 사회에는 신분 제도가 엄격하여 왕족 출신의 성골이나 귀족 출신의 진골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신라의 귀족들과 혼인을 맺어야 한다."
진골인 김유신은 성골인 김춘추와 사귀었습니다.
어느 해, 정월 보름날이었습니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초대하여 집 근처 넓은 뜰에서 축국놀이를 즐겼습니다. 축국놀이는 꿩 깃이 꽂힌 공을 발로 차는 놀이였습니다.
김유신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자락을 힘껏 밟았습니다. 옷은 짝 소리를 내며 터졌습니다.
김춘추는 놀이에 팔려 옷이 터진 줄도 몰랐습니다. 한참 놀고 난 김춘추는 돌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소매자락이 터진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놀아서 옷이 터진 줄도 몰랐네."
김춘추가 중얼거렸습니다. 김유신이 얼른 말했습니다.
"상공, 옷이 터졌으니 그대로 돌아갈 수야 있소?"
"괜찮소. 대단치 않으니까 집에 가서 꿰매겠소."
"아니올시다. 우리 집에 오셨다가 그렇게 되었으니, 소생의 집에서 꿰매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에 있던 보희와 문희가 얼른 일어나서 김춘추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상공께서 옷이 조금 터졌으니, 보희 네가 꿰매드려라."
김유신이 말하자, 보희는
"어찌 하찮은 일로 귀공자를 가까이 하겠습니까?"
하고 다른 방으로 건너 갔습니다. 김유신이 이번에는 문희에게 청했습니다.
"네가 좀 꿰매 드리겠니?"
"그러겠습니다."
문희는 얼른 승낙을 하였습니다.
김춘추는 문희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문희는 제 반짇고리에서 비단 실과 바늘을 가지고 와서 얼굴을 다소곳이 숙인 채 터진 곳을 꿰매기 시작했습니다.
'문희가 보희보다 마음시도 곱고 훨씬 낫구나~!'
김춘추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을 다 꿰맨 문희가 김춘추에게 말했습니다.
"천한 소녀가 귀공자의 옷을 꿰매드리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김춘추는 문희가 얼굴만 예쁜 줄 알았는데, 목소리도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마음씨 곱고, 얼굴 예쁘고, 목소리가 고운 문희를 한번 본 김춘추의 가슴은 마구 뛰었습니다.
김춘추는 30살이 넘어 이미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 김춘추였지만, 문희에게 마음이 끌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김춘추는 이튿날부터 축국을 한다는 핑계로 김유신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꼭 한 차례 문희를 만나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김춘추와 문희는 남의 눈을 피해 만났습니다.
하루는 김유신이 문희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너, 상공(김춘추)의 아기를 가졌지?"
"오라버니, 그러니 어쩌면 좋아요?'
"상공은 본부인이 있다. 그렇지만, 너를 첩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어."
김유신은 문희를 김춘추의 정식 부인으로 들여보낼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덕여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김유신의 집 앞에 있는 남산으로 거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유신은 선덕여왕과 신하들이 남산에서 놀고 있을 때, 자기 집 마당에 나무를 잔뜩 쌓아 두고 불을 질렀습니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올랐습니다.
"저게 무슨 연기인고?"
선덕여왕이 신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김유신이 누이동생을 태워 죽인다 하옵니다."
신하의 말을 들은 선덕여왕은 기겁을 하였습니다.
'아니, 무슨 까닭으로 ?"
"남편 없이 아기를 배었기 때문이랍니다."
"남자가 누구인 줄은 알 것이 아니오?"
"어느 진골의 소행이라 하옵니다."
이 말을 곁에서 들은 김춘추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보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춘추공의 안색이 좋지 않군. 왜 그러시오?"
'황공하옵게도 그 진골이 바로 저입니다."
"책임을 져야겠군~! 어서 내려가 어명으로 혼인을 하도록 하고, 김유신의 누이동생을 구하시오."
이렇게 하여 김유신은 문희와 감춘추가 정식 결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김유신이 김춘추의 옷을 일부러 밟은 것처럼,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었습니다.
뒷날, 김춘추는 태종무열왕이 되었으며 문희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문희가 왕비가 되던 날, 보희는 비단 치마 하나를 태우며 울었습니다. 그 비단 치마는 동생인 문희에게 꿈과 바꿔 가진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둘이 모두 처녀였을 적에 언니인 보희가 꿈을 꾼적이 있었습니다. 보희는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간밤에 괴상망측한 꿈을 꾸었어."
"무슨 꿈인데?"
"꿈에 서산에 올라가서 소변을 보았는데, 글쎄 서울이 온통 오줌으로 가득 차지 않겠니?"
'언니, 그 꿈 나에게 팔아요~!"
"내 꿈을 사겠다고? 무엇을 주겠니?"
"비단 치마를 드리겠어요~!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어요."
"그래."
보희는 말로,
"내 꿈을 너에게 판다."
하고는 문희에게 그 값으로 비단 치마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꿈은 왕비가 될 꿈이었습니다. 영특한 문희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언니에게 꿈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언니가 꿰맸어야 할 김춘추의 옷을 문희가 꿰매었고, 마침내 왕비가 된 것입니다.
(청솔역사교육연구회 엮음 "이야기 한국사'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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