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3종세트’와 정론직필의 비극 [조인스]
이향상의 色手語筆 | 술자리 풍속도에 관한 고찰
조선
후기 대담한 성풍속화를 그려 당대 ‘점잖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혜원 신윤복(1758~?)은 비슷한 스토리텔링 구조를 지닌 두
개의 인상적인 그림을 남겼다.
하나는 국보 135호로 지정된 <주유청강(舟遊淸江·맑은 강
뱃놀이)>이고, 다른 하나는 <청금상련(聽琴賞蓮·가야금 들으며 연꽃을 감상함)>이다. 우선
<주유청강>부터 구경하자.
큰 바위절벽 앞에 강이 펼쳐져 있고 놀잇배가 한 척 떠 있다. 왼쪽에서는 젊은
사공 하나가 열심히 노를 젓고, 가운데쯤에서는 악공이 젓대를 분다. 두 사람은 신체가 조금 작게 처리되었는데, 신윤복은 주연급이
아닌 사람을 왜소하게 그리는 습관이 있다.
뱃놀이를 즐기는 주인공은 총 여섯 사람이다. 여자 셋 남자 셋. 이른바
3 대 3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센스쟁이’들은 멋진 이야기를 찾아냈다. 가운데 뒷짐 진 수염 난 남자가 입은 도포의
띠는 유난히 희다.
당시 이렇게 흰 띠를 매는 것은 상중(喪中)이라는 의미다. 검은 갓과 흰 옷, 그리고 흰 띠를 맨
경우는 부모 3년상 중 거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옷차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내는 상주(喪主)생활에 진력나 문득
기생놀이를 나왔다는 이야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내의 마음을 꿰뚫는 신윤복의 솜씨다. 남녀 3
대 3의 모임에서는 거의 대부분 세 가지 경우가 있다. ‘룸살롱’에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첫째는
‘껄떡’과(科)다. 안면몰수하고 일단 주무르고 만지고 벗긴다. ‘너희는 서비스녀들이고 나는 손님이니 잔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하는 종류다.
그림에서 어깨를 싸 안고 담배 한번 피워보라고 수작을 거는 친구가 바로 이 과의 학생이다. 눈 돌아간
것을 보라. 음흉하며 성급한 기운이 확 끼치지 않는가? 둘째는 ‘딴청’과다. 상중인 사내가 그 유형이다. ‘기분 풀어주겠다고
해서 오기는 왔는데, 내가 이래도 되나?
나는 이런 친구들과 질적으로 좀 다른데 말야…’ 하는 기분으로 제 짝을
놔두고 껄떡이가 노는 꼴이나 지켜본다. 제 짝은 뭐하나? 저쪽에서 생황을 불고 있다. 사내가 숫기가 없어 놀아주지 않으니, 에라,
이거나 불자. 뭐 그런 표정으로 뱃머리에 떨어져 앉아 가슴에 바람 넣어 열심히 불고 있다.
셋째는 ‘순정’과다.
내가 아는 어느 후배 녀석은 술집에서 꼭 제 명함을 내놓으며 다음에 연락하자며 손가락을 건다. 당신은 오래 전부터 기다리던 나의
이상형이라고 예찬을 늘어놓으며 순애보 한 장을 쓴다. 이런 친구들의 짝이 되는 여자는 유난히 예쁘기도 하지만, 내숭 또한 경지에
오른 경우가 많다.
정말 남자라고는 처음 보는 것처럼 새초롬한 표정으로 강아지 발 흔들듯 앙증을 떤다. ‘어머머,
물이 이렇게 맑다니….’ 배 한편에서 손바닥으로 강물을 뜨는 여자 옆에 턱을 괴고는 넋 나간 사람처럼 보고 있는 친구가 순정과다.
어찌, 이렇게 고울 수 있지? 감히 손도 못 잡고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질 듯 바라본다.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사내
마음이 그리 진화했을 리 없으니, ‘룸살롱 사내 3종세트’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윤복의 <청금상련>을 보면
‘3종세트’는 더욱 리얼해진다. 아까는 야외인지라 조금 낭만적으로 펼쳐졌지만, 이번에는 담장을 친 집안 뒷마당 연못가인지라
걸쭉해질 수밖에 없다.
‘껄떡남’은 여인을 허벅지에 앉히고 치마 수색하느라 난리가 났다. 갓과 탕건마저 벗어 던진
사내의 입에서 침이 흘렀는지 술이 흘렀는지 여자가 뺨 주위를 슬쩍 닦는다. 기생이 몸을 비틀자, 남자가 뒤에서 구시렁거린다.
조옴, 가만히 있어보라니깐! 둘째, 딴청남. 어김없이 여기에도 이런 남자가 있다.
제가 배정받은 여자는 놔두고 괜히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껄떡남 노는 모양새를 완상한다. 이 사내의
버선발을 보라. 하나는 제 여자에게 잔뜩 가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껄떡’ 쪽으로 향해 있다.
제 짝이
우왕좌왕이니 여자는 ‘내가 싫은 게벼’ 하면서 장죽을 물고 연기 한줌을 뿜었다. ‘제 꼬락서니는 모르고 남 퇴짜 놓기는!’
성깔이 좀 깔깔해졌다. 셋째. 순정남. 이번에는 가야금을 뜯는 여인과 눈이 맞았다.
죽부인에 기대앉아 생전 여자와는
‘예술’밖에 같이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처럼 그윽한 눈길을 하며 담뱃대를 문다. 정말 가야금 연주 한번 기막히구나. 우리 내일 또
만날 수 있을까? 명함이라도 꺼낼 듯한 저 넋 나간 표정을 보라.
이 그림을 보며 상상력이 뛰어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이들 그림 속의 껄떡남은 바로 신윤복 자신이라고. 기생 불러 거시기할 음흉한 마음은 있으면서 괜히 딴 짓
하는 양반들을 비웃기 위해 자신을 출연시킨 것이라고…. 거참, 그럴 듯하다. 이런 룸살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잡지사 부장인
여기자가 슬쩍 끼어든다.
“음, 여기는 여자가 끼어들 자리가 못 되는데….”
그러자 그 여기자는 한숨을
푸욱 쉬며, 룸살롱판에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저는 말이에요.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한자를 보면
소름이 돋아요.”
“희한하네. 이상한 알레르기가 다 있네? 기자가 정론직필을 무서워하면 쓰나?”
이렇게
핀잔을 주자 다시 한숨을 뿜는다.
“기자 초년병 시절 취재원들과 저녁을 먹다 길어져 룸살롱에 간 적이 있어요. 취재원
중 여과장이 하나 있어 안심하고 따라갔는데…. 다들 취한 상황에서 여자들이 들어와 갑자기 테이블로 올라가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흥미 있게 봤는데,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더니 그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나는 내 대답이 그의 행동을 자제시킬 수 있겠다 싶어 ‘저, 사실 기자예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는 알았다고 하더니
갑자기 붓과 종이를 테이블에 올렸죠. 그러고는 거기에 붓 자루를 꽂더니 허리와 둔부를 움직여 큰 글씨로 ‘正論直筆’이라고 쓰는 게
아니겠어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내게 선물이라면서 글씨를 둘둘 말아 건네주더군요. 엉겁결에 받아 두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통에 넣었어요. 그 뒤로 룸살롱 이야기만 나오면 치가 떨려요. 언젠가 한번 이 문제를 결정적으로 파헤치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죠.”
세상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여기자의 마지막 말은 분명 ‘정론직필’에
대한 각오로 들리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