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세상은 비에 얼룩지고 내 마음 서러운 날은 풀밭을 찾아갔다. 뿌옇게 흐르는 안개비를 옷소매로 닦으며 짓무른 황토흙을 지쳐 나가 풀밭을 걸었다. 구둣발 밑에서 깨어지는 풀들의 비명, 어떤 풀꽃들은 안개속에서 팔굽이를 들어 필사적으로 얼굴을 닦고 있었다. 무심히 고개를 돌렸을 때 등뒤로 거대하게 찍혀진 발자국들 황토흙 발자국들, 흐르는 옷소매로 나도 몇번이나 얼굴을 지웠다. 풀들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