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고 물은 깊거니 이름은 가져서 무엇에 쓰겠느냐?(중략)
네 이름은 네 몸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남의 입에 달렸다.(중략)
마치 저 바람소리 같아서 소리는 본래 있지 않고 나무에 부딪쳐 나건만
도리어 나무를 흔들어 제낀단 말이다.
네가 일어나서 저 나무를 좀 보아라.
나무가 고요할 때 바람이 어디 있느냐?
네 몸에는 본래 아무 것도 없었고
이런 것, 저런 것과 함께 비로소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중략)
무릇 네 몸이 얽매이고 붙들리는 것은 결국 여러 몸이 한데 겹친 관계인데
바로 네 이름도 그와 같다.(중략)
이름이 이렇게 많고 보니 자연히 짐이 무거울 수밖에.
그러므로 네 몸이 장차 이름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박지원, '선귤당기蟬橘堂記'